전쟁이란 병력이건 정세건 충분히 적을 압도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하며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불리한 싸움은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손자가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공간에서는 소수 병력으로 압도적인 다수와 싸워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곤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소수정예의 힘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 미 해병대의 'few'
이 영화의 제목은 'A FEW GOOD MEN'입니다. 영어로 다수에 맞서는 소수를 말할 때 즐겨 쓰이는 단어가 'few'입니다. 이 'few'를 특별히 좋아하는 군대가 바로 미 해병대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미 해병대 모병 슬로건으로 유명한 것이 "We're looking for a few good men'(우리는 소수의 잘난 놈들을 찾는다)으로 이 슬로건은 미 해병대가 등장하는 법정 영화인 <어 퓨 굿 맨>에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a few good men'은 이중적인 뜻으로 쓰이지만 밀리터리라면 '소수정예'로 옮겨야 제 맛입니다.
한 마디로 미 해병대는 적 다수와 싸우는 소수 임무를 맡아 왔습니다. 바다를 통해 적국에 들어선다는 전통적인 해병의 의무는 바다를 건너가는 것도 문제지만 적이 점령한 해안에 진입하기 때문에 큰 위험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외교 정책과 맞물려 주어지는 국외 원정 임무 역시 늘 다수의 적 사이에 고립되기 마련이어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이죠.
소수를 이끌고 다수와 싸워야 한다는 문제점을 돌파하기 위한 미 해병대의 대책은 오히려 소수라는 약점을 장점으로 바꿔 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수인 것은 잘난 놈들만 모아 놓았기 때문이며, 설사 네가 잘난 놈이 아니라 해도 여기 해병대에 들어온 이상 잘난 놈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조직문화를 세운 것입니다. 이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감투 정신-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목적을 위해 과감하게 싸우는 마음의 자세나 태도- 과 전투력이 숫자 이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미 해병대의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력한 자부심에 근거한 미 해병대의 소수정예 정신은 압도적인 패배에 직면했을 때도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1950년 겨울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6개 사단에 포위되었을 때 영화 20-30도를 오가는 혹독한 추위마저 더해졌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이 많은 희생을 치렀으나 탈출에 성공한 데에는 항공 지원, 영국군과 미 육군의 지원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미 해병대 특우의 감투 정신을 꼽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 해병대와 중국군이 장진 저수지 전역에서 벌인 전투인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해병대원들을 'chosin few'라 부르며 특별히 기억하는 것을 보면 미 해병대가 'few'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 해병대 모병 슬로건 중에 'The Few. The Proud'가 있는 것처럼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힘은 소수라는 사실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부심에서 출발합니다.
- 공수부대
해병대 못지않게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군대가 있다면 공수부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해병대와 공수부대는 서로 누가 더 빡센가, 누가 더 멋진가를 놓고 종종 주먹이 오가는 토론을 벌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적진 깊숙이 낙하산 메고 뛰어내린 뒤 소수로 고립되어 본대가 올 때까지 버티고 또 버텨야 하는 공수부대 역시 이럴 줄 알았지만 스스로 좋아서 모인 소수정예들입니다.
공수부대 역시 해병대와 유사한 방법으로 소수의 힘을 끌어냅니다. 세 번의 점프를 마쳐야만 사람 취급을 받는 공수부대의 통과의례는 그 자신이 이제는 특별한 소수 중의 하나라고 느끼게 하는 힘을 갖습니다. 지나온 역사와 선배들의 무용담을 중시하는 것 역시 해병대와 공수부대의 공통점이죠. 이러한 것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버텨내고 이길 수 있는 든든한 밑천이 되는 것입니다.
6천 명 남짓한 영국군을 이끌고 2만이 넘는 프랑스군과 결전을 벌이기 전 헨리 5세는 'We few, 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로 전해지는 유명한 연설로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려 했습니다. 다수가 소수를 이기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소수가 압도적인 다수를 이긴다면 이것이 전설이요 역사가 될 것이라는 것이 헨리 5세의 주장이지요. 오늘 나와 함께 싸우는 이들 모두가 내 형제라는 왕의 이야기도 전우애를 강조하는 보편적인 언급이면서도 귀족들인 기사로부터 평민 출신인 궁수들까지 다양한 계급을 아우르려는 속내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흑인과 함께 싸운 백인 병사들이 제대 후 인종 차별에 대해 당시 평균보다 유연한 생각을 했다는 조사도 있는 것처럼 전우애는 많은 가치를 넘어서며, 특히 불리한 상황을 함께 뚫고 나온 소수의 기억은 더 강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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