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에 대해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홍차를 마셔야 전쟁을 한다는데 과연 사실일까요? 대략 사실입니다. 1차 대전 당시 군인들 배급 물자를 보면 독일군에겐 커피가 필수지만 영국군에겐 홍차가 필수 배급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프랑스군 목록에는 와인이 필수로 들어가 있죠.
카카오 열매 씨앗을 볶아서 만드는 초콜릿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만 대부분은 액체로 인류와 함께했었고 액체로 존재하던 시절은 최음제의 일종으로 여겨지며 고관대작들이나 즐길 수 있던 음료였습니다. 초콜릿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1820년대에 고체로 만드는 법을 개발하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즐기게 되었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미국 사람들이 초콜릿 맛을 알게 되면서 서민들을 위한 기호식품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양키들이 뒤늦게 1차 대전에 뛰어들게 되었으니 영국군의 홍차나 프랑스군의 포도주에 해당하는 필수 보급으로 무엇을 골랐을까요? 다름 아닌 초콜릿이 그 주인공이었고 그 이름도 유명한 '허시'사가 중책을 맡았습니다. 바로 역사에 길이 남을 초콜릿 대량생산의 시작이요 수많은 젊은이가 군대에서 초콜릿 맛을 알아 사회로 쏟아져 나오니 바야흐로 초콜릿 대중화 시대의 숨은 큰 손은 바로 1차 대전인 셈이지요.
실로 전시중인 미군에 납품된 초콜릿 메이커로서 허시는 유명했습니다. 1937년 미군이 군용 비상식량으로 허시의 초콜릿을 납품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미군이 제시한 납품 조건은 무게는 4온스로 만들어야 할 것, 고열량으로 만들어야 할 것, 상온에서 녹지 않아야 할 것, 맛은 삶은 감자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만 만들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마지막 조건이 좀 의아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너무 맛있으면 비상식량의 취지와 달리 평소에 다 까먹게 될 유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초콜릿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비상식량도 평소에 손댈 생각을 안 하게 하기 위해서 고의로 맛없게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허시는 브라우니 같은 제과 방식을 본따서 초콜릿을 제조했고 실제로 단단한 강도와 보다 높은 내열성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을 맞추기 위해 다크 초콜릿 수준으로 카카오 함량을 높이고 오트밀을 섰어서 식감도 괴악하고 맛도 괴악하게 만들었죠. 이 초콜릿 개발을 담당했던 미 육군의 병참 장교 폴 로건 대령은 첫 제품을 받은 후 냄새나 맛이나 빨랫비누 같았다고 하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단단했는지 건장한 병사들도 평범한 초콜릿처럼 씹어먹으려면 이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고, 잘 녹지도 않아서 총검으로 잘게 자르거나 단단한 물건으로 후려쳐 박살내고 입에 넣어서 조금씩 녹여 먹어야만 했는데 그나마도 잘 안 녹아서 기존 초콜릿보다 녹여먹기마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맛도 끔찍해서 병사들은 이 초콜릿을 밞아 뭉갠 감자 맛, 타이어 맛, 히틀러의 비밀 무기 등의 별명으로 열심히 까댔다고 합니다. 그래도 녹이기만 하면 먹기는 쉬우니 초콜릿을 탄 물을 환자들의 식사 대용으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또 카카오 함량도 높은 만큼 본래 취지인 칼로리와 기력 보충이라는 비상식량으로서의 능력은 차고도 넘쳤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엄청난 물량이 제조된 허시의 초콜릿은 당시 총 30억 개가 제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전선에서 맛없는 군용 초콜릿을 먹던 병사들이 가족이나 애인에게 허시 초콜릿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턱에 허시는 본토 시장에서도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전선에서 많은 병사들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아 각종 훈장과 상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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